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요한 6, 55]
프라 안젤리코의 성체성사를 세움
(1437-43년, 프레스코, 186x234cm, 산마르코수도원, 피렌체, 이탈리아)
도미니코회 수사인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는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51개의 프레스코를 그렸으며, 그 중 <성체성사를 세움>은 서른다섯 번째 방에 있는 벽화이다. 안젤리코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는 성찬례의 모습을 그렸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입에 성체를 직접 넣어주시고, 제자들은 순종의 자세로 성체를 모신다.
이 가운데 여덟 명은 긴 식탁 뒤에 앉아 있고, 나머지 네 명은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다. 공간 구성 때문에 화가는 여덟 명만을 긴 식탁에 배치했을지도 모르지만, 8이란 숫자는 영원의 숫자로, ‘구원’와 ‘부활’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구원을 받은 여덟 명의 노아 가족들이 홍수 이후 새로운 세상을 열었고, 모든 유다인은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아야 하며, 주간 첫날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고, 부활하시고 여드레째 되는 주간 첫날 저녁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성령을 주시고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주셨기 때문이다.
성체성사가 제정되는 방 안 공기는 긴장과 흥분이 감돈다. 왼쪽에 성체를 이미 받은 제자들은 지극히 평온한 표정이지만, 아직 성체를 받지 못한 오른쪽 제자들은 초조한 기색이다. 제자들은 빵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예수님의 사랑을 함께 나누려 한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도 포함되어 있다. 오른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네 제자 가운데에 유다는 자신의 머리카락과 수염의 색처럼 검은색 후광이 그려졌다.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지만, 그의 눈빛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하염없이 체험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 있고, 예수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식탁에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안젤리코는 성체를 나눠주시는 예수님의 움직임을 통해 당신 자신이 ‘생명의 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요한 6,54)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오른쪽 뒤의 두레박이 있는 우물도 모든 갈증을 없애주는 그리스도의 성혈과 관계되며,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을 사도들과 함께 등장시켜 성체성사의 은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성찬의 식탁에 초대되었고, 성체성사로 하느님의 생명을 채운다. 그러니 성체성혈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며 예수님 안에 머물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야겠다.
[2020년 6월 14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손용환 요셉 신부(풍수원성당)]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