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물이 솟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할 것이다. [요한 4, 14]
칼 하인리히 블로흐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1872년, 동판에 유채, 104x92cm, 국립역사박물관, 코펜하겐, 덴마크)
코펜하겐 북동쪽 힐레뢰드라는 작은 도시로부터 약 15km 떨어진 곳에 프레데릭스보르 성이 있으며, 그 성 안 크리스티안 4세 왕실 교회 2층 입구 왕실 기도실에는 칼 하인리히 블로흐(Carl Heinrich Bloch, 1834-1890)가 그린 예수님의 생애 23개 연작이 기도실 가득히 장식되어 있다. 블로흐는 1865년부터 1879년까지 14년 간 이 작품을 그렸으며, 연작 가운데 열 한 번째 주제인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은 요한복음 4장 1-42절이 그 배경이다.
나무 그늘이 있는 우물가에 하느님의 사랑을 말해주듯 붉은 옷과 푸른 망토를 걸친 예수님이 앉아 있다. 우물을 경계로 예수님의 맞은편에는 믿음을 갈구하는 여인처럼 흰 옷을 입고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하는 금색 두건을 쓰고 두레박에 기대어 사마리아 여인이 서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떠나 갈릴래아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가로질러 가셨고,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르셨는데,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때는 정오 무렵이었고, 길을 걷느라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우물가에 앉으셨는데,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그곳에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 4,7) 하고 말씀하신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요한 4,9)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대답하셨다.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나에게 물을 청하고,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0. 14) 그러자 그 여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선생님, 이제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시군요. 저는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메시아께서 오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시겠지요.”(요한 4,19.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요한 4,26)
사마리아 여인은 몸을 돌리며 허리를 굽혀 점점 예수님에게로 다가가고 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점점 믿음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손가락으로 당신을 가리키며 “내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고 계신다. 당신이 바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의 물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블로흐는 예수님의 머리 뒤에 후광으로 그분이 거룩한 분임을 표현했고, 배경에는 세 명의 제자들이 마을로 가서 음식을 구해 햇볕을 받으며 들판을 걸어 예수님께로 되돌아오고 있다.
[2020년 3월 15일 사순 제3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손용환 요셉 신부]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