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 20]
제임스 티소트의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1894년경, 수채화, 15.7×14.1cm, 블루클린 미술관, 뉴욕, 미국)
19세기 영국에서 활동한 프랑스 화가 제임스 티소트(James Tissot, 1836-1902)가 그린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마태오복음 18장 15-20절이 그 배경이다. 그림을 보면 어둠 속에 세 사람이 앉아 있다. 중앙에 앉은 사람은 오른손을 이마에 괴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뉘우치고 있으며, 그 앞에 등을 보이고 있는 사람은 왼손으로 탁자에 있는 성경 두루마리를 집고 오른손 손가락으로 그에게 하나하나를 따지며 무엇인가 말하고 있으며,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율법에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고도 네 말을 듣지 않으면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광경을 예수님께서 그들의 등 뒤에서 보고 계시고, 예수님께서는 커다란 망토로 죄인과 증인을 감싸고 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보면 형제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 18-20)
예수님께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망토 안에는 세 사람 중 두 사람만 있다. 죄를 뉘우치는 죄인과 형제의 말을 듣고 겸손하게 기도하는 증인만 예수님의 품 안에 있다. 그러나 형제의 죄를 나무라는 사람은 예수님의 품 밖에 있다. 마음을 모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려면 남을 탓하기 전에 자기의 잘못을 뉘우쳐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친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께 용서 받으려면 우리가 먼저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한다. 예수님 품 밖에서 남이 나에게 잘못했다며 손가락질만 하는 유혹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주님께서는 따지고 말하는 사람의 기도는 멀리하시고, 뉘우치고 들어주는 사람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기 때문이다.
[2020년 9월 6일 연중 제 23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손용환 요셉 신부(풍수원성당)]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