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그리스도 (목판에 에그 템페라, 산타마리아 수도원, 풀사노, 이탈리아)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겨자씨에 비유하신다. 아주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나 그곳에서 새들이 쉴 수 있게 된다. 시작은 초라하지만 결과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가운데 키가 큰 나무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왼쪽에는 제자들이 모여 있다. 예수님은 붉은 자주색 히마티온과 푸른색 키톤을 입고, 오른손을 들어 나무를 가리킴과 동시에 축복의 동작을 취하고 계신다. 왼손에는 가르침이 기록된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머리 뒤의 후광 안에는 십자가형이 있고, 그 세 모서리에는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라는 그리스 문자 “ΟΩΝ(오 온)”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하느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고, 생명의 원천이시며 십자가의 죽음으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생명임을 의미한다. 황금색 배경은 유한한 공간인 3차원의 현실 공간을 뛰어넘은 무한한 공간, 전혀 깊이를 알 수 없는 초월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다. 예수님의 모습을 비롯해 그림 전체는 전형적인 비잔틴 양식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마르 4,33) 많은 비유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만 별도로 비유를 풀이해 주고 계신다. 이러한 특전을 받은 왼쪽의 제자들은 따로 풀이해 주었음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제자들은 앞에 겨자나무를 보고 있지만, 겨자씨 한 알이 이룩한 성과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가운데 겨자 나무가 묘사되어 있다. 바닥에 군데군데 보이는 작은 풀들은 겨자 나무 한 그루와 상당히 대조적이다. 씨앗 중에서 아주 작은 겨자씨가 땅에 뿌려져 껍질이 터지고 싹이 나와, 땅을 뚫고 저절로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마르 4,31) 그늘을 만들어 낸 것이다. 나무 위에는 공중의 새들이 와서 가지에 깃들이고 있다.
겨자씨는 갈릴래아 호수 근처와 북쪽에서 흔한 식물이다. 겨자는 1년생 식물로 중동지역에서는 3m이상씩 자라 숲을 이루고 있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를 작은 씨의 비유에 이용하신다. 산 모양을 한 봉우리 위에 우뚝 솟은 나무와 그 위에 새들은 화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에제키엘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룩하게 될 국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선포한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드높은 산 위에 그것을 심어 높으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되리라.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에제 17,23)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는 사람이 작은 겨자씨 한 알을 뿌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 나라는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한 알의 겨자씨 같지만, 장차 완전한 큰 나무로 성장하리라는 것이다. 점차 성장한 나무는 수확할 풍성한 열매를 내게 된다. 그러나 미소한 겨자씨가 넉넉한 열매를 맺기까지는 씨를 뿌린 사람의 인내심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렇듯 하느님 말씀의 열매를 맺는 일은 씨앗이 땅속에서 싹이 터서 자라나 곡식이 충분히 익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듯이, 기다림이 요구될 것이다. 겨자씨처럼 지금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이지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루카 17,20)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신 말씀처럼, 작은 믿음이 성장하여 큰 나무가 될 것이다. (2015년 6월 14일 연중 제11주일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