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1867년, 캔버스에 유채 252x183cm, 국립현대미술관, 베네치아, 이탈리아)
이두매아 출신 헤로데 대왕은 유다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했다. 이 공사는 기원전 19년부터 시작하여 그가 죽은 후에도 계속되어 서기 64년에야 완성되었다. 헤로데가 건축한 성전을 본 사람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루카 복음서에서도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진 빼어난 성전이었음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웅장한 예루살렘 성전은 완공된 지 겨우 6년 만에 파괴되었다.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기원후 70년 유대아 전쟁 때 예루살렘 성전은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졌는데(루카 21,6), 이탈리아 낭만주의 화가 프란체스코 하예즈(Francesco Hayez,1791-1882)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장면을 장엄하고 실감나게 표사했다.
예루살렘은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함락되어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인들은 로마군에게 무참히 학살되었다. 이곳저곳에는 연기가 자욱하고, 높은 성전 벽에 매달린 채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람들, 이미 벽에서 떨어져 바닥에 깔려 죽어 있는 사람들, 바닥에 주검으로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성벽에 머리를 처박고 기대어 통곡하는 여인, 로마 군사들에게 납치되는 여인들, 오른쪽 앞에 머리를 움켜쥐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인들 등 참혹한 광경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 한 가운데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다인의 촛대인 메노라(Menorah)를 바라보는 붉은색 튜닉을 두른 이가 바로 티투스 황제이다.
동시대의 유다인 역사가 요세푸스 플라비우스는 <유다인 고대사>의 기록에서 이렇게 서술하였다. 이때 기근까지 퍼져 ‘다락에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여자들과 어린아이들로 가득 찼고, 거리의 길이란 길은 모두 늙은이의 시체로 채워져 있었으며, 어린아이들도 젊은이들도 굶주림으로 퉁퉁 부어서 망령처럼 거리를 헤매다가 쓰러졌다. 이런 재난에 대하여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고, 슬프게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게 된 이유는 헤로데가 지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면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로마 군사들이 몰려오자 유다인들은 제 목숨을 살리려고 모두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티투스의 군대는 예수님께서 예언한 대로 예루살렘 성전을 포위하고 밖에서 기다렸다. 문제는 식량이었다. 음흄한 소문까지 번졌다. 성문이 열리고 아사 상태에 빠진 유다인들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로마 군사의 칼에 쓰러졌다.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갔다. 이러한 상황을 하예즈는 낭만주의 화가답게 현실에서 인간이 겪는 비참한 감정과 폭력들을 여과하지 않은 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