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마태 18, 15]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사도의 손)
(1508년, 종이 위에 드로잉, 29×19.7cm, 알베르티나 판화관, 오스트리아 빈)
뒤러(Albrecht Durer, 1471-1528)는 독일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이며 판화가이다. 특히 그는 동판화로 수많은 종교화와 제단화, 초상화를 제작하였다. ‘사도의 손’은 독일에 있는 한 성당의 제단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그린 습작 가운데 하나이다. 뒤러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손을 통하여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강하게 표현하였다. 이 작품은 후에 ‘기도하는 손’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2004년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미술 감독 정웅모 신부]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마태 18,19-20)
‘기도하는 손’은 그림의 모티프에 관한 여러 일화가 있다. 1490년대 뒤러와 프란츠 나이슈타인은 절친한 친구 사이로, 둘 다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하여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제비뽑기로 나이슈타인이 먼저 돈을 벌어 뒤러의 학비를 대고, 뒤러의 공부가 끝나면 나이슈타인이 그림 공부를 하기로 약속했다.
친구가 보내준 학비로 공부한 뒤러는 천재성을 인정받아 황실 화가가 될 정도로 성공하였다. 역할을 바꾸어 뒤러가 나이슈타인을 그림 학교에 보내려고 했으나, 친구를 위해 오랫동안 희생하며 험한 육체노동을 했기에 손이 굳어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였다. 나이슈타인을 찾아간 뒤러는 창을 통해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뒤러를 위해 기도드리는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주님! 저의 손은 이미 일하다 굳어서 그림을 그리는 데는 못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몫을 뒤러가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 참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하소서!”
뒤러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못 하고 북받치는 감정을 참으며, 그 친구의 손을 즉석에서 스케치로 그렸다. 화구도 없이 푸른 잉크로 그린 단색 데생으로, 이 작품이 바로 ‘기도하는 손’이다. 후에 뒤러는 이렇게 말하였다. “기도하는 손이 가장 깨끗한 손이요, 가장 위대한 손이다. 기도하는 자리가 가장 큰 자리요, 가장 높은 자리이다.”
이 그림의 기도는 감사의 기도이며, 그 감사는 자신의 희생을 전제로 하기에 더욱 아름답다. 나이슈타인이 친구 뒤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뒤러의 재능이 하느님의 세계를 더욱 아름답게 밝히기를 바라는 것은 바로 기도의 힘이다. 기도 안에서 우리는 내 안의 많은 나를 버릴 수 있으며, 이웃을 향한 사랑과 참다운 희생을 하느님께 약속드릴 수 있다.
[경향잡지, 2006년 12월호, 권용준 안토니오]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