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인도로 광야에 나가시어,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마태 4, 1]
모레토 다 브레시아의 광야에서의 그리스도
(1540년경, 캔버스에 유채, 45.7×55.2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뉴욕)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은 직후, 고행의 길로 들어서신다. 성령의 인도로 황량한 사막의 한 고지로 간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단식하며 기도하신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낮에는 불같은 태양으로 달구어진 지면과 뜨거운 공기가 숨통을 막았을 것이고, 밤에는 떨어진 기온으로 시달렸을 것이다. 이렇게 사십일을 보낸 예수님의 몸과 마음은 모두 지쳤고, 심지어 사탄까지 나타나 유혹을 받게 된다. 사탄은 예수님에게 여러 가지 조건을 붙이며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지만, 결국 예수님은 사탄의 유혹을 모두 물리치신다. 공관복음서 모두 예수님이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마르코는 다른 두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세 가지 유혹 이야기는 생략하고, 사탄의 유혹을 이겨내신 후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지내면서 천사의 시중을 받은 내용만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 화가 모레토 다 브레시아(Moretto da Brescia, 1498-1554년)는 마르코 복음서의 광야에서 유혹 사건을 잘 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40일을 단식하는 동안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과 함께 지내시는 모습을 무기력한 신체와 명상하는 자세로 내보이고 계신다. 온갖 새들과 들짐승들로 에워싸인 예수님이 빰에 손을 대고 있는 자세는 전통적으로 고독과 명상을 나타내지만, 한편으로는 평화로워 보인다. 성령으로 도유(塗油)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 사명을 펼치시기 전 사탄의 유혹과 시련에 맞선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아담처럼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지만. 그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고 승리하셨기에 그림에서처럼 온갖 새들과 들짐승에게 평화로운 낙원을 다시 회복시킨 것이다. 예수님의 발아래에는 뱀이 그려져 있다. 에덴동산에서 살던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느님이 금지하신 나무 열매를 따 먹고 하느님을 피해 숨는다. 예수님은 ‘새로운 아담’의 모습으로 자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인간)의 참 평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신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로마 8,19-21)
예수님과 대각선 상에는 사슴 한 마리가 뛰어놀고 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 한다. 사슴은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께 보호 받고 안전할 것이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힘을 매어 주시고 나의 길을 온전하게 놓아 주셨네.” (시편 18,33) 사슴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될 하느님 백성을 상징한다.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이사 35,6)
예수님 등 뒤에서 천사들은 기도하며 시중들고 있다.
“너에게는 불행이 닥치지 않고 재앙도 네 천막에는 다가오지 않으리라. 그분께서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시편 91,10-13)
[2015년 2월 22일 사순 제1주일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