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1, 29]
디르크 보우츠의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1464년, 목판에 유화, 53.5×41.2cm, 알테 피나코테크 미술관, 뮌헨, 독일)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화면 중앙에는 수직으로 요르단 강이 흐르고 있다.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을 사이에 두고 예수님께서 서 계시고, 세례자 요한과 봉헌자가 있다. 물은 정화와 죄 사함과 생명을 상징하는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회개와 세례와 믿음으로 요르단 강을 건너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두 손을 모으고 사뿐히 첫발을 내딛고 있다. 예수님께서 서 계신 곳은 황량한 광야이다. 그분은 고난을 상징하는 맨발로 광야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우뚝 서 계신다. 그런데 그분의 발 앞과 그 근처 물가에는 유리처럼 영롱한 보속들이 있다. 그 보속들은 예수님의 삶이 그랬듯이 고난 뒤에 오는 영광을 상징한다.
봉헌자는 모자를 벗고 엄숙한 표정으로 무릎 꿇어 기도드리고, 그 뒤에는 그의 주보 성인인 세례자 성 요한이 서 있는데, 요한은 왼손으로 봉헌자의 어깨를 두드리며, 오른손으로 요르단 강 건너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요한은 봉헌자에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 하며 그의 시선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한다. 봉헌자가 머문 곳은 예수님께서 서 계신 곳과 달리 울창한 목초지이다. 풍요 속에서도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르단 강 가운데 강둑에 생명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생명나무는 인물들과 삼각구도를 이루고 있고, 요한은 이 생명나무도 가리킨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어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통해 모든 죄를 용서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세하고 은은하게 묘사된 이 작품은 우리에게 거룩한 평온함을 준다. [2018년 1월 14일 연중 제2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손용환 요셉 신부(캐나다 런던 성 김대건 한인성당)]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