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창세 3, 15]
알브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하와
(1504년, 동판화, 25x19cm, 오토쉐퍼박물관, 슈바인푸르트, 독일)
신앙심 깊은 화가 뒤러는 이 작품을 통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깨끗하고 순결한 인간의 이미지, 그 지고지순한 창조물의 이미지만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하느님께서 원하신 선의 세계에서 벗어나, 하느님께서 금하신 타락의 세계로 빠져드는 순간을 묘사하였다. 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금지된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는 나약한 인간의 헛된 욕망 때문에 천국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해야 하는 타락의 운명, 모든 인간이 짊어진 그 원죄를 다루고 있다.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면, 하와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그녀는 선악과 열매가 가득 달린 나무 앞에 있는데, 이미 한 입 베어 문 열매를 왼손에 들고는 아담이 알지 못하게 뒤로 감추고 있다. 그녀는 뱀과 공조하여 금단의 열매를 오른손으로 아담에게 권하고 있다. 열매를 권하는 하와의 모습은 당당하기 그지없으나 아담과 시선을 마주치지 못한다. 악의 부끄러움인가? 아담은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듯하지만, 함부로 열매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의지를 보이며, 눈빛 역시 하와를 직시하고 질책하는 듯하다.
타락의 위험성 앞에서 아담이 오른손으로 꽉 잡고 있는 나무가 있다. 지혜의 상징인 앵무새가 앉아있는 것으로 보아 생명의 나무이며, 아담의 손은 악의 나락으로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강한 신앙심의 표현이다. 뒤러는 앵무새가 앉은 가지 아래 ‘1504년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가 새기다’라는 글귀가 적힌 패널을 또렷하게 그려 넣었다. 그리고 그 패널을 이정표 삼아 신앙의 여정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것 같다.
세속을 사는 인간에게 이 세상은 믿음의 적인 수많은 유혹의 위험으로 가득하다. 영원한 생명의 길도 있고, 영원히 헤어나지 못할 죽음의 구렁텅이도 있다. 과연 선택의 힘은 무엇일까? 뒤러는 이 작은 그림을 통해 점차 나약해져 가는 우리의 심성과 신앙에 강한 질책을 하고 있다. 길처럼 생겼다고 해서 모두가 길은 아니다. 우리가 왔던 원래의 길을 찾고, 그 참된 길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것이 신앙의 길임을 뒤러는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경향잡지, 2009년 8월호, 권용준 안토니오]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