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마태 5, 44]
제임스 티소트의 주님의 기도
(1886-94년, 수채화, 21.4×16.2cm, 브루클린 박물관, 뉴욕, 미국)
예루살렘 성전 동쪽 올리브산에는 예수님의 자취를 더듬고 그분의 가르침을 되새기게 하는 기념 성당들이 곳곳에 있다. 그 중 하나가 올리브산 정상 부근에 있는 ‘주님의 기도 성당’이다. 이 성당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는 곳에 세워졌고, 예수님께서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는 일화는 마태오복음 6장 9-13절과 루카복음 11장 2-4절에 나온다. 주님의 기도 성당 지하에는 30명 남짓 들어가서 쉴 수 있는 동굴과 가운데에 큰 바위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이 바위 위에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다고 전해진다.
제임스 티소트(James Tissot, 1836-1902)가 1886-94년에 수채화로 그린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서서 하늘을 우러러 팔을 벌리며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장면이다. 예루살렘 성전 위로 석양이 지는 것으로 보아 동쪽 올리브산의 위치를 정확히 그림에 반영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자들에게 전수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여라.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날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루카 11,2-4)
예수님의 흰 옷은 거룩한 변모 때와 같이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분은 기도 중에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앉아서 예수님을 따라 팔을 벌려 주님의 기도를 바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제자는 예수님의 옷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지만, 어떤 제자들은 아직도 회색빛을 띠고 있기도 하고, 머리에 쓴 흰색 두건부터 하얗게 변모하는 제자들도 있다.
많은 이들이 똑같이 기도를 하여도 어떤 사람은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변모하지만 어떤 이는 반쯤 변모하고, 또 어떤 이는 하나도 변모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건을 쓰지 않은 한 제자는 옷에 흰 줄이 크게 그려져 있어 그도 조금씩 예수님의 거룩함에 물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도 날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를 바치다 보면 조금씩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변모할 것이다.
[2019년 7월 28일 연중 제 17주일 원주주보 들빛 4면, 손용환 요셉 신부]
– <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에서 옮김